무중력 책장 : 소설같은 실화, "스물 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작년 초에 현정이가 <스물 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했다>는 책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잠깐 요약해주는데도 참 재미난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핫북 코너에서 <스물 아홉살 생일, 1년 후 죽기로 했다>가 눈에 띄었습니다. 출간된지 꽤 되었는데도 아직도 인기가 있나 봅니다.
가볍게 훑어 보려다가 어느덧 빠져들어 읽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말씀을 들으며 조용히 공부하고, 사회에서 정해준 길에 따라 남자 만나고 직장구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고, 정규직 번듯한 직장과 결혼할만한 건실한 남자친구가 없으면 자괴감을 느끼는 것이 한국과 참 비슷했습니다.
아무런 열정도 설렘도 없는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부터 남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생일 날, 혼자 조각 케이크 하나를 먹으려다가 조각 케이크 위에 얹어진 딸기가 굴러 떨어지자 궁상맞게 주워 먹으려다 터져 버리는 감정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도 우울하게 혼자 생일을 보낸 적이 많으니까요. 시작은 여러모로 공감이 되지만, 저자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아마리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갔습니다. 저는 상상도 못한 방식이었습니다.
스물아홉생일 1년후 죽기로 결심했다 줄거리
스물 아홉 생일 혼자서 조각 케이크 하나를 먹으려다, 조각 케이크를 장식하고 있던 딸기가 굴러 떨어졌는데 바닥에 굴러떨어졌음에도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집어 먹으려고 궁상을 떨고 있다가 죽고 싶어합니다. 뚱뚱하고 별 볼일 없는 자신이 너무 싫었던 겁니다. 그 순간 TV에서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모습이 나옵니다. 그것을 보자 죽을 때 죽더라도 라스베가스에 한 번 가서 멋지게 한 탕하고 죽자는 마음을 먹습니다. 딱 1년. 서른 살 생일에는 라스베가스에서 전 재산을 털어 넣은 뒤 멋지게 자결하겠다는 꿈을 꾼 것 입니다.
1년 후 생일 날 라스베가스에서 탕진 후 죽겠다는 결심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우선 돈을 벌어야 하고, 영어 공부를 해야 하고,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게임을 즐기려면 게임 방법도 익혀야 합니다. 아마리는 낮에는 파견직으로 일하며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돈을 많이 주는 곳을 찾다가 호스티스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뚱뚱하고 안 예쁘니 써 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어렵게 한 곳에서 일을 구했고, 밤에는 호스티스 일을 합니다. 소설 속 호스티스 가명이자 저자의 필명인 ‘아마리アマリ’는 나머지, 덤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원래 29살에 죽으려다가 30살까지 1년 더 살기로 했으니 덤이 더 생겼다는 생각, 원래 자신의 삶이 늘 나머지 같다는 생각에서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호스티스 일을 하려니 머리하고 화장도 하고, 옷도 예쁘게 입는 것을 익히게 되면서 어느덧 아마리는 점점 예뻐지기 시작합니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며 사람도 사귀게 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도 조금씩 친해집니다.
그러던 중 동창회에 나가 꿈을 쫓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 친구는 아마리의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허황된) 꿈을 적극 지지하며 한국으로 치면 이태원 술집 같은 곳에 데리고 다니며 영어 공부를 하게 도와줍니다. 아마리는 적극 지지해주는 친구를 만나자 더욱 더 꿈에 박차를 가합니다. 새로 생긴 외국인 친구와 영어 회화 연습을 하고, 블랙잭 연습도 합니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호스티스로 일한 뒤, 일이 끝나고 나면 친구들을 만나 영어회화와 카지노에서 할 게임 연습을 하며 라스베가스에 갈 준비를 하는 겁니다. 이런 살인적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살이 쪽 빠져 예뻐졌고, 자신감도 늘어 점점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 갑니다.
이러다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건강이 회복하자 다시 일을 하고, 예상했던 비용보다 돈이 적은 상태라 누드 모델 아르바이트도 해 봅니다. 세상 시선에서는 쉽지 않은 일들을 하면서 아마리는 세상을 다시 보게 됩니다.
이렇게 준비를 한 끝에 드디어 라스베가스로 전재산(그동안 모은 돈 모두)을 들고 떠납니다. 며칠 간 아마리는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카지노에서 화려한 한 때를 보냅니다. 그리고 생일날 당일, 죽기 위해 호텔방으로 올라옵니다. 카지노에서 얼마를 잃고 땄는지 마무리를 해보니, 놀랍게도 처음 가져온 돈이 거의 그대로 였습니다. 그리고 거울 속에는 1년 전의 뚱뚱하고 자신감없고 못난 여자가 아닌, 예쁘고 당당하고 멋진 여자가 있었습니다. 아마리는 계속 살기로 합니다.
다시 돌아와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국계 회사에 취업을 하고, 더 멋지게 살기 시작합니다.
꿈, 목표에 대한 재정의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 놀랍습니다. 그리고 꿈 또는 목표라는 것이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라스베가스에 가서 끝내주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같은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국에서 1년간 살아보는 것. (비자 문제가 있어 6개월로 수정했습니다)
폼페이 유적지 근처에서 1주일, 이탈리아에서 1~2달 느긋하게 여행하는 것.
이런 것이 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꿈을 말해보고 적극적으로 쏟아부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라스베가스에 가서 가진 돈을 다 쓰고 화려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꿈이다' 라는 이야기에도 지지를 해주는 친구를 만나고, 자신이 꿈을 향해 달려가니 꿈을 향해 인생을 걸고 있는 이들이 친구로 생깁니다.
도서관에서 친구 기다리다가 절반 정도 읽고, 빌려와서 나머지를 후딱 읽었습니다. 재미나고 쉽게 읽었지만 오래 지나도록 곱씹어 보게 됩니다. 특히 사는 것, 꿈, 목표,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이 책이 떠오릅니다.
 |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케이크 에디션) -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예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