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비웠더니 행복이 찾아왔다

무중력 서재 : 버리고 비웠더니 행복이 찾아왔다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책들은 읽으면 기분이 홀가분해진다. 꼭 필요한 것들, 좋아하는 것들만 남기고 비우자는 미니멀리스트의 철학처럼 책도 대체로 가볍다. 인테리어 잡지 보는 기분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 사진을 구경하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 뿐 아니라, 미니멀리스트의 책에서 비슷한 심정을 느끼는 걸까? 도서관에서 미니멀 라이프 관련 책을 빌리기가 어렵다. 모두 빌려가고 예약까지 밀려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운좋게 불광천 작은 도서관에 <버리고 비웠더니 행복이 찾아왔다>가 꽂혀 있어 냉큼 빌려왔다.

버리고 비웠더니 행복이 찾아왔다, 야마구치 세이코


원래 책 표지는 좌측과 같다고 하는데, 도서관의 책들은 겉표지를 벗겨 정리되어 있다. 겉표지를 벗긴 속 표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야마구치 세이코의 비우는 이유 : 가족 행복을 위한 비움

최신 트렌드를 따라한 보여주기식 미니멀리즘도 아니고, 복을 부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물건이 너무 많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면, 늘상 "엄마, 양말, 엄마 이게 안보여." "여보 이거 어딨어?" 라면서 물건 찾느라 짜증이 나고, 엄마는 엄마대로 왜 정리 안하냐고 썼으면 제 자리에 두라고 잔소리하게 된다. 저자는 물건을 줄이니까 물건이 어디 있는지 찾기 쉬워져서 서로 신경질 부리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주부인 저자 입장에서는 가족들 (남편이나 아이들)이 어지른 것을 뒤꽁무니 쫓으며 치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정리하는 짜증도 사라진 것 같아 보인다. 또 정리 자체가 쉬워져 금세 끝내고 느긋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마음의 여유가 생겨 가족을 더 잘 챙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즉, 물건을 줄임으로써 스트레스가 줄고, 시간도 절약되고, 여유가 생기며, 가족 관계도 좋아진 것이다.


가족을 위해 버리고 비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책 곳곳에서 가족에 대한 고민을 엿 볼 수 있다.

자녀들을 18세에 독립시킬 계획이라 앞으로 10여년 정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10여년을 충만하게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자녀가 없는 내게도 도움이 되는 관점이었다.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걱정이 되는 것이 자녀양육기간이다. 지금 아이를 낳아서 서른살까지 뒷바라지 하려면... 이라고 계산을 하다, 이내 한숨이 나온다. 어휴.....

그러나 18세에 독립을 시키겠다고 결심하고, 18세에 독립하여 아이가 혼자 설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법, 정리하는 법, 물건 관리하는 법 등의 혼자 살아가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치며, 독립을 장기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런 방식으로 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서 아이들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가사분담'이 아니라 '생존훈련'이다.

자녀들과 가족회의를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 집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가족회의를 요청한다고 한다. 가족회의를 하자고 한 사람이 안건을 이야기하고, 가족들의 의견을 수렴해 어떻게 할지 해결책까지 결정한단다. 본인이 안건을 상정했고, 해결책을 결정했기 때문에, 만족스럽게 문제가 해결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안건 이라고 하니 거창하지만 '오빠가 내 물건 가져갔어' '쟤가 나 괴롭혔어.'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자녀가 가족회의를 소집하면 온 가족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엄마나 아빠가 둘 중 한 명의 편을 들며, "왜 가져갔니? 당장 돌려줘." 라며 혼을 내면, 혼난 아이는 변명을 하고, 혼나게 만든 아이는 의기양양하여 다음에도 부모의 힘을 빌려 상대를 혼내주고 싶어한다. 이와 달리 가족회의를 소집해 당사자의 변도 충분히 듣고, 합의하에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참으로 성숙한 방식이라 생각되었다.



30분만에 4인가족 이삿짐 꾸리기

전근이 잦은 남편 때문에 이사가 잦은데, 4인 가족이 2톤트럭 한 대면 충분하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개인 짐들은 박스 8개 밖에 안 된다. 그래서 이사짐 전체를 꾸리는데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종종 비상훈련 하듯이 이사짐을 꾸려보고, 짐이 너무 늘었으면 정리하기도 한다고 한다.


마침 이 책을 읽던 때에 이사준비를 하며 비용을 뽑고 있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올 때 2.5톤 트럭에 미어 터지게 싣고 왔는데, 그 사이 덩치 큰 가구와 잡다한 짐이 엄청나게 늘었다. 이번에 이사갈 때는 2.5톤으로 택도 없겠는데... 2.5톤에 단거리에도 60만원 정도 들었으니, 다음 이사비용은 족히 100만원은 나올 것 같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야마구치 세이코의 집은 아이 둘까지 있는 4인 가족이 30분이면 전체 짐을 다 꾸릴 수 있고, 2톤 트럭 한 대면 널널하게 이사할 수 있다니 정말 부러웠다.

이전에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으면서도 같은 이유로 감탄했었다. 사사키 후미오는 세탁기 하나와 작은 짐 꾸러미 하나가 이사짐의 전부여서 이사 자체가 30분 만에 끝났다고 한다. 정리에서 청소까지. 


나는 이삿짐을 나 혼자 꾸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포장이사를 해야 하고, 포장이사 한 분들이 정리해 주는 것은 내 성에 차지 않기 때문에 이사 후에 다시 내가 쓰기 편하게끔 정리하는데 한 두 달이 걸린다. 4~5월 경에 이사를 갈 생각인데, 그 때까지 짐을 확 줄일 수 있을까...?

하지만, 버리고 비우기 1년 반 정도가 되었음에도 홀가분하게 비울 수는 없었기에, 이사 날짜까지 미니멀리스트들처럼 짐을 줄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밖의 소회

야마구치 세이코는 주부이자, 저자이다. 각각의 일은 사용한 도구를 정리하는 것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집안일을 할 때는 전자렌지나 조리도구 등을 꺼내어 쓰고, 집안일이 끝나면 원래 자리로 싹 집어 넣는다. 그러면 집안일은 끝난 것이다. 일을 할 때는 노트북과 프린터를 꺼내어 쓰고, 일을 마치면 노트북과 프린터를 장 안에 집어 넣는다. 그러면 일이 끝난 것이다. 도구를 치움으로써 그 일이 끝났다는 것이 구분이 되는 것이다.

내가 프리랜서 생활 할 때 괴로웠던 것이, 퇴근이 없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일하면 좋을 것 같으나, 일상과 일이 뒤섞이며 온통 일만 하는 기분이었다. 다음에 집에서 일을 할 상황이라면 사용하는 도구들을 꺼내어 쓰고, 끝나면 제자리에 가져다 두는 방식을 고려해봐야겠다.


이상한 곁다리 효과는 이 책을 읽다가 무인양품에 가보고 싶어졌다. 대부분 버리고 비운 가운데, 저자가 엄선한 물건들 중 상당수가 무인양품 것이라서, 나도 무인양품에서 마음에 쏙 드는 물품을 발견하게 될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저자 야마구치 세이코는 <무인양품으로 시작하는 미니멀라이프>라는 책도 썼다.)


무인양품 위치,


무인양품 매장 위치를 검색해보니 마침 최근에 구파발 은평 롯데몰에 무인양품이 오픈했다고 한다. 물건을 많이 비우면 한 번 가봐야겠다.



버리고 비웠더니 행복이 찾아왔다 - 6점
야마구치 세이코 지음, 은영미 옮김/나라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