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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겠습니다, 생생한 50세 퇴사 후기

· 댓글 0 · 라라윈

이나나키 에미코 "퇴사하겠습니다"

예전에 이 책을 빌려 프롤로그 앞의 에피소드를 읽다가 멈추었습니다. 아프로 헤어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는데, 다른 일로 바빠 책 읽을 여유가 없었던 탓 입니다. 미니멀리즘 책을 검색하던 중 이 책이 목록에 나왔습니다. 50세에 아사히 신문을 그만둔 기자의 퇴사 후기인데 왜 미니멀리즘 책으로 이 책이 나왔을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읽다가 멈췄던 책이라 다시 빌려와 읽었습니다. 다시 읽어도 아프로 헤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책의 시작은 재미났습니다. 대체 아프로 머리가 뭘까요? 마이콜 머리 같은건가 싶기도 하고요. 궁금증에 찾다보니 작가 이나나키 에미코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왜 사람들이 말을 거는지 알 듯 했습니다.


이나나키 에미코 아프로 헤어


시작은 가볍고 유쾌하고, 시종일관 재치있는 표현으로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지만, 주제가 주제인만큼 내용은 마냥 가볍지 않았습니다. 아사히 신문 데스크 일 때의 권력, 지위 등을 내려놓기까지의 불안감, 그렇다고 회사에 있을 때의 속터짐과 스트레스, 퇴사 후에 겪게 되는 칼바람부는 무직자의 현실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한국의 경우도 '명함'에 따라 대우가 다르고, 회사가 빽이 될 때가 많기 때문에 작가의 고민이나 사회적 문제제기에 공감되는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책 곳곳에서 느껴지는 일본어 번역체와 일본 지명이 아니면 한국인의 에세이라고 해도 믿었을 겁니다.


퇴사 준비 (1~3장)

퇴사를 결심하는 것은 거창한 계기가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하자마자 그 날 뛰쳐나오는 사람보다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수 없이 하다가 간신히 결행하는 사람이 더 많겠죠. 작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어느 날 문득 퇴사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고, 10~12년 정도를 준비하여 50세에 그만둡니다. 아주 소소한 계기들까지 그대로 포착해 전달하고 있어서 읽으면서 큭큭 웃음이 나고 재미납니다.

그 중 하나가 우동현(가카와 현이 우동으로 유명해서 작가가 붙인 별칭)으로 전직 발령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작가는 멘붕이 옵니다. 오사카 데스크를 거쳐 더 승진을 해야 하는데, 시골도시로 좌천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보면 부산지사 데스크 이후 서울 본사로 돌아와야 될 듯한 상황에서 삼척지사로 간 듯한 느낌이었나 봅니다.


오사카 지사는 규모가 있어 데스크의 파워도 크고 일도 적었던 데에 반해 가카와현에서는 인력이 적어 데스크가 해야하는 일이 엄청나게 많아 돈 쓸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돈 쓸 시간이 있어도 도쿄와 오사카에 있던 도시녀성의 눈에 차는 고급품이 없었고요. 돈 쓸 시간도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다 보니 자연스레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휴일이면 쇼핑대신 인근의 자연으로 탐방을 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도시녀성이던 작가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뜹니다. 스트레스 받을 때 지르고 또 지르는 것보다 돈을 쓰지 않아도 자연의 경이로움을 감상할 수 있고, 소소한 재미들을 알아가게 된 것 입니다. 이러면서 가진 것들을 줄이고, 일상의 많은 것들을 덜어내기 시작합니다. 이 책이 미니멀리즘으로도 검색되었던 이유는 이 때문인 듯 합니다. 난 미니멀리즘에 꽂혔어! 미니멀리스트가 될거야! 가 아니라, 물건들에게 구속된 생활이 소변줄과 온갖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사는 중환자 같다고 느껴 하나 둘 끊어나간 것이었습니다. 하나 둘 없애다가 저녁에 불을 켜지 않고 살아 보고, 냉장고도 없애 봅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고, 하나 둘 의존하던 제품들을 없앨수록 자유로워짐을 느낍니다.

특히 퇴사를 염두에 두고 있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이 월급이 끊기면 어떻게 살아갈까 인데, 제품들을 하나 둘 없애보고, 없어도 사는데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자신감과 확신을 얻습니다.


덤으로, 우동현은 우동 소비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으면서 동시에 저축액이 가장 많은 동네라는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 그 이유는 우동이 저렴한데(기본 우동 가격 1천원 정도이고, 튀김 등 토핑 최대로 추가해도 5천원), 사람들이 물가를 계산할 때 우동값으로 계산을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테마파크 입장료가 3만원이면, 우동이 30그릇인데...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우동값 대비 비싼 것은 잘 소비를 하지 않아 저축액이 가장 높은 것 아닐까 라고 분석했습니다. 마침 제 주위에 이런 분이 계셔서 (이 분은 국밥으로 계산합니다. 그 돈이면 국밥 몇 그릇...) 이해가 되었습니다. 억지로 아끼려고 들면 힘들텐데, 그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가치가 없는 것에는 소비하지 않겠다고 접근하기 때문에 돈이 모이는 것이었습니다.


퇴사 후 (4~6장)

퇴사 직후의 멘붕이 오는 요소와 비로소 알게 되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도 아주 생생합니다. 첫째, 부동산 집 구하기가 어렵고, 주택담보대출이 안 되고 (무직자이므로), 둘째, 신용카드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과거 아사히 신문기자였을 때는 쉽게 해결하고 때로는 갑질을 해 댈 수 있던 많은 것들이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지급하던 노트북과 핸드폰을 반납하고, 처음으로 노트북과 핸드폰을 사는 과정도 험난합니다. 일본의 핸드폰 요금제도 우리와 흡사한지, 기계 할부 + 요금제를 통한 할인 등이 복잡하여 아이폰6를 사러 갔다가 기기값 월 할부는 6천원인데 어느새 매달 8만원을 내야 하는 요금제에 가입하고 핸드폰을 받아온 뒤 며칠 간 앓아 눕습니다.


은행, 대출, 부동산, 회사지급 비품이었던 것들의 구입, 세금 처리 뿐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하고 응대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왜 나왔는지 설명해야 하고, "뭣하러 잘 나가는 아사히 신문사에서 나와 계획도 없이 백수가 되었니?" 하는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도 감내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작가가 느낀 것은 모든 것이 회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 신분(명함)이 없는 사람이 살기 매우 힘든 구조로 설계된 사회 입니다. 이 부분이 매우 크게 다가왔던지 4장, 5장, 6장에 걸쳐 강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아베노믹스의 허상에 대한 비판도 꽤 강합니다. 퇴사하고보니,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면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고, 퇴직금의 7분의 1은 세금으로 떼가고, 일부 연금은 60세 이상이 되어야 받을 수 있고, 지역 의료보험은 매우 비쌉니다. 28년 정도 일하며 많은 세금을 냈지만, 무직자가 되었을 때 국가가 바람막이가 되어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의 암울한 흑역사도 생생하지만, 그만두고 나서 재미있어진 것과 달라진 것도 생생합니다. 우선 스트레스가 없어서 밝은 사람이 되고 친화력이 좋아집니다. 아사히 신문에 있을 때는 아사히 신문기자라는 것 만으로 이용하거나 부탁하려고 들러붙는 사람이 많아 경계를 했는데, 이제는 50세 독신 무직자 동지를 찾아 적극적으로 인연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온전히 자기 것이 된 하루를 잘 보내고 있었고요.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둬야 될 때가 옵니다. 문장력 좋은 작가의 책을 통해서 그 과정에서 준비해야 할 것, 느끼는 것, 필요한 것들에 대해 단단히 예방주사를 맡은 느낌이었습니다.


책 속의 문장

11쪽. 줄을 놓고 "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보면 왜인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다른 줄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줄이 많았는데 내가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12쪽. 행복이란 아무데나 굴러다니고 있는 게 아닐까요? 다들 그걸 알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굴러다니는데 보려고 하지 않는 건 아닐까요?


15쪽. 이득이 있다는 것은 무서운 겁니다. 예를 들어 비싸고 맛있는 음식, 명품 등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듭니다. 큰 행복은 자그마한 행복을 보이지 않게 하니까요. 자신도 모르는 새에 큰 행복에 아니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맙니다.

일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높은 월급과 좋은 대우에 익숙해지면 거기서 벗어나는게 점점 힘들어집니다.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조금이라도 나빠지지 않을까 공포와 분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결국 자유로운 정신은 점차 사라지고 인생은 공포와 불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욕심 많고 자존심 강한 인간은 나도 모르는 새 그런 함정에 빠질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다시 말해 나는 이득인 환경에서 이제 그만 도망쳐야 한다는 공포심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저도 쉽게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에 익숙해져 누군가에게 갑질하는 오만방자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제가 가진 지위가 낮아 갑질의 수준이 낮았던 걸지도...)


16쪽. "그래서 앞으로 뭐할건데?" 음...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안 할 거에요. 할 수만 있다면 정해진 직업 없이 살려고요.


27쪽. 회사 여자 선배가 40살 되었을 때 "마흔이십니까! 드디어 인생의 반환점이네요!" 라면서 고의적으로 한방 먹였고, 선배가 부글부글대자 한 방 제대로 먹인 것 같아 통쾌해 한 에피소드. 그 후. 그 말이 예기치 않게 내 마음속을 왔다갔다 하면서 좀처럼 밖으로 나가주질 않았습니다.


(남에게 날린 독설이 되레 자기 맘에 남았다는 이야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말 예쁘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33쪽. (승진누락 이후 왜 내가 밀렸나 고민하던 에피소드) 해답없는 질문이란 정말 무서운 겁니다. (중략) 보답없는 싸움과 아무리 애써도 불식시킬 수 없는 차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차별따위는 없다는 회사.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아니라면 이를 두고 달리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지독하게 악질적인 덫에 걸린 느낌.


49쪽. (좌천되었을때) 돌이켜보니 당시의 나는 즐거움을 찾는것에 무척 진지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나를 유배보낸 인간들에게 '날 물 먹였다고 생각하지? 천만의 말씀! 난 요렇게나 재밌고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은 쪼잔한 심경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런 쪼잔한, 그리고 필사적인 마음이 내 인생을 바꿨습니다.


52-53쪽. 언제든 채워진다는 것은 물건이 없던 시절에는 엄청난 호사였을 겁니다. 하지만 언제든 무엇이든 다 있는 지금, '있다'는 것을 호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오히려 '없다'는 것이 훨씬 사치스럽습니다. 훨씬 더 호사입니다.


55쪽. 계절마다,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자연. 그 속을 혼자서 헤쳐 들어가면 한발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놀라움과 고난과 감격의 연속을 경험하면, 테마파크나 게임 따위. 비싼 돈을 지불하고 즐기는 인공적인 오락 따위. 김빠진 풍선 같습니다. "인생 도처에 아름다운 청산이 있나니..." 게다가 그걸 즐기는데 한 푼도 들지 않아요.


70쪽. "아니. 50까지는 못 그만둬. 50이 되면 생각해볼께."

아아. 말이란 참 무섭습니다. 순간적으로, 그때까지 떠올리지도 않았던 말이 갑자기 튀어나오다니. 하지만 후일 돌이켜보니 모든 말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켜켜이 쌓여있지 않나 싶습니다.


96쪽. 스스로 납득할 수 있다면 자기 명함은 자기 뜻대로 만드는 것 아닌가요? 누구 눈치를 볼 것도 없습니다.


102쪽. 무언가를 없애면 거기에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게 아니라, 그곳에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원래 거기에 있었지만 무언가가 있음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려고 하지 않았던 세계입니다. 그리고요, 그 별세계의 매력이 상당합니다. '없다'는 것 속에 실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던 것 입니다.


106-107쪽. 현대인은 물건을 손에 넣음으로써 풍요로움을 구하려 합니다. 그러나 '있으면 편리한 것'들은 '없으면 불편한 것'들로 바뀌곤 합니다. 어느덧 '없으면 못사는 것'들이 자꾸 늘어나고요. 마치 수많은 튜브를 달고 사는 중환자 같은 모습입니다.


157쪽. 사람을 속이려면 우선 불안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든다는 건 불안으로 가득한 일 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쩌면 고령자가 사회가 성장하기 위한 호구가 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161쪽. 회사가 잘되면 모두에게 좋다. 그러니 의료부터 연금까지 성장을 지속하는 회사에 기대면 안심이라며 국가조차도 회사에 기대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를 '회사사회'라고 명명)


165쪽.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한계까 있습니다. 모두가 필요한 것을 손에 넣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 승패를 가르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필요하게 만드는 것 입니다. '있으면 편리한' 것들 말 입니다. 그리고 경제성장에 휘말린 사람들은 점점 물건에 의존하며 살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경제성장은 자립이 아니라 의존을 낳은 것 아닐까요?


167쪽. (어려운 사회 위기) 이러면 "걱정마세요. 저에게 기대십시오. 다 해결해줄테니까" 라고 하는 사람이 인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아베노믹스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202쪽. 할머니들과 친해지고 싶은 이유. 인생의 고독을 극복하고 있는 선배들. // 목욕탕에 오는 할머니들 입니다. 그곳에 가면 누군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운동도 됩니다. 그 하나하나가 노인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걸 조금씩 무리해가며 온 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혼자서도 괜찮아 하지만 노력도 필요해' 라는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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