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인 뉴욕, 가볍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영화

그런 날이었다. 피곤하고 쉬고 싶은데, 누워서 뒹굴대면서 가볍고 따뜻한 영화 한 편 보고 싶은 날. 그냥 자기에는 피곤한 하루가 잠자리까지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이랄까, 피곤했던 하루에 영화 한 편의 보상이라도 받고 싶달까.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던 중 '미드나잇 인 파리'가 눈에 띄었다. '오! 티빙에 미드나잇 인 파리가 있네'라며 찜하는 순간 바로 옆에 '미드나잇 인 뉴욕'이 눈에 띈다. 시리즈인가? 싶어 눌러보니 크리스마스 날 뉴욕의 한 호텔에서 묵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라고 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인기에 힘입어 제목을 비슷하게 지은 모양이다. 나 역시 미드나잇 인 뉴욕이라는 제목 때문에 혹해서 클릭했으니 제목을 지은 분들의 전략이 적중했다고 볼 수 있다. 미드나잇 인 뉴욕의 원제는 '크리스마스 인 뉴욕 A Christmas in New York' 이었다.

미드나잇 인 뉴욕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했다. 크리스마스 무렵, 뉴욕의 한 호텔을 찾은 여러 손님들이 그 날 밤 겪는 일을 그린 것이다. 각자 고민거리 또는 선택의 기로가 있고, 그 날 밤 그들은 무언가를 결심했다. 각 커플들이 교차하는 지점은 없고, 그저 각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섯 커플(사귀는 사이가 아닌 친구도 포함)과 한 명의 연예인이다.

 

* 밥 & 아이린은 근사한 노부부였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뉴욕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온다. 비행기만 타면 뉴욕에서 근사한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을 결심한 것을 축하하며 시작했다. 이야기를 풀어나갈수록 조금씩...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결심하지 못한 채 노인이 된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부부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서로를 위해 자신이 몹시 아끼던 것을 팔아 아내와 유럽여행을, 그리고 남편이 늘 부러워하지만 비싸서 시도하지 못한 배 낚시를 할 수 있는 작은 배를 준비한다. 돈이 많은 노부부라서가 아니었다. 여느 부부처럼 40만원이면 지붕을 고칠 수 있는데, 그 돈으로 선상낚시를 갈 수는 없다는 대화를 하는 이웃같은 이들이 정말 큰 결심을 했던 것이다. 보고 있으니 저렇게 나이들어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 올라왔다.

 

* 코트니 & 샘 - 한국계 배우이신 린다 박이라 우선 눈길이 갔다. 스위트룸에 묵고 있는 잘 나가는 패션 사업가이고, 화가인 전남편을 만나 오해를 풀고 화해하는 과정이었다.

 

* 벤 & 수잔 - 학회 (또는 컨퍼런스)로 만난 동료 혹은 친구인 듯 한데, 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회사를 그만 둘 결심을 하지 못하고, 수잔은 남편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아이 때문에 이혼할 수 없다며 구원자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서로의 고민을 해결해주며 각각 문제를 헤쳐 나갈 결심을 한다.

 

* 캐서린 & 자스민 - 레즈비언 커플로 자녀 출산 문제로 갈등을 빚는다. 자스민은 당장, 라잇나우, 아이를 갖자는 입장이고 캐서린은 (아마도 변호사인 듯 한데) 승진한 후에 갖자는 입장이었다. 초반에는 캐서린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가뜩이나 일로 스트레스 받는 사람을 왜 이리 들볶나 하는 느낌이었으나, 두 사람이 조금 더 진지하게 문제에 다가서는 모습을 보니, 출산을 (승진 이후로) 미루는 것은 사실 상황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 결정을 미루는 많은 이유는 사실 상황보다 내 마음의 문제일 때가 많은 지도 모르겠다.

 

* 올리베로스 & 가브리엘라 - 얼마전 남친 호세와 헤어진 가브리엘라를 데리고 크리스마스 파티에 가려고 온 친구 사이다. 친구 사이인 남녀가 호텔 방을 같이 쓰니 꽤 어색하다. 상황을 봐도 '올리베로스가 가브리엘라를 좋아하는구나?' 라고 눈치를 챌 수 있는데, 듬직하고 매너 좋은 한 남자로 옆을 지켜준다. 가브리엘라가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고, 스스로를 나쁜 남자에게 휘둘리기나 하는 그저 그런 여자로 보지 않도록 힘을 준다.

 

* 잭 - 가수/뮤지션이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투어 공연으로 뉴욕 호텔방에 있다. 아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가족과 떨어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아들에게 신년 공연까지 마친 뒤 가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8개월짜리 투어 공연 기회가 와 고민을 한다.

저마다의 고민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고민을 해결해 나가는 길이 뾰족한 묘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보거나, 주위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실마리를 얻거나, 결심을 할 용기를 얻는 일상적인 방식이라 더욱 공감이 되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나도 덩달아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듯한 기분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본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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