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7년동안의 잠 그림책
전자도서관을 넘기다 인기 대여 목록에서 박완서 그림동화를 보았습니다. 박완서 선생님이 동화를 쓰셨다니? 더욱이 그림동화라...
박완서 선생님이 쓰신 동화는 어떨지 궁금해서 바로 빌려보았습니다. 이북리더기로 보면 흑백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림동화 그림의 원래 색을 다 보려고 태블릿 전자도서관 어플에서 다운받아서 보았습니다. (컬러 이북 리더기 나온다는 카더라는 몇 년 전부터 있던데 아직인가 봅니다)
음침한 표지 이미지를 보면서, 무슨 이야기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읽은 박완서 선생님의 책이 <기나긴 하루> 였고, 읽다가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와 펑펑 울면서 읽었습니다. 이제는 <기나긴 하루>가 어떤 내용인지는 기억이 흐릿한데, 속시원하기도 하면서 묵직하기도 한 느낌으로만 남아있습니다. <기나긴 하루> 이후 처음 읽는 박완서 선생님의 책이 <7년동안의 잠>이라 더욱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7년 동안의 잠>은 걱정처럼 묵직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개미와 매미의 이야기 입니다. 전 왜 표지를 보면서 개미라고 상상도 못했을까요?
굶주리던 일개미 한 마리가 매미유충을 발견하고 몹시 기뻐합니다. 이 덩치면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요.
매미유충에서 멈칫했습니다. 그림동화이다보니 매미유충이 너무 잘 그려져 있어서, 책을 덮을까 고민했습니다. 전 벌레가 싫고, 벌레 그림도 무서워요. 특히 죽어서 움직이지 않는 벌레는 공포 그 자체입니다. 차라리 살아있는 벌레는 사람을 보면 도망가고 이내 눈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걱정이 없는데, 죽어있는 바퀴벌레 시체는 누군가 치우지 않으면 1주, 2주도 그 자리에 놓여있으니까요. 매미 허물과 매미 사체도 마찬가지 입니다. 더욱이 매미는 덩치도 크기 때문에 죽어서 떨어져 있으면 몹시 무섭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네 집에 놀러가는 지름길 계단에 매미가 죽어 있어서 몇 달 간 그 근처를 얼씬하지 않고, 멀리 돌아가는 길로 다니기도 했어요. 저의 벌레 공포증을 두고 "벌레들이 너를 더 무서워해. 네가 벌레의 몇 배 크기인 인간이 다가오는게 훨씬 무서울거야." 라고 하지만, 벌레 공포가 줄어드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매미 유충 그림 때문에 책을 그만 볼까 고민이 되었으나, 박완서 샘의 동화책은 어떤 내용인지 호기심이 공포심을 이겼습니다. 매미유충에서 가능한 시선을 돌리며 (때론 매미유충을 손으로 가리며) 빠르게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늙은 개미는 매미유충을 식량으로 삼으려는 일개미들을 말렸습니다. 매미가 한 번의 여름 노래를 위해 7년간 잠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매미들은 늙은 개미의 말에 따라 매미를 땅 속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매미는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되어 날아오르게 되었습니다.
매미가 한 순간을 위해 7년간 잠들어 있다는 의미로 <7년동안의 잠>이었습니다.
동화 답게 짧았습니다.
가볍게 읽었고 편안하지만 뭔가 남았습니다.
단순히 7년간의 노력이 아름답다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고생했어도 요즘은 부드러운 흙이 없이 콘크리트로 막혀 있어서 7년의 노력이 물거품 될 수도 있다는 늙은 개미의 말이 더 찡했습니다. 매미를 위해 수고스럽게 부드러운 흙이 있는 곳으로 매미를 옮겨주는 것을 보면서, 7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조력자들의 뒷받침도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매미 유충 그림 때문에 볼까말까 고민하고, 잠시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었어도 30분도 안 걸렸습니다. 실제로는 10분 남짓 읽은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고 동화책이라고는 영어 공부하기 위해 읽은 영어 동화가 전부인데, 어른에게도 그림동화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보기에도 편하고, 책 한 권을 읽었다는 뿌듯함에 기분좋게 잠들 수 있었어요. 빽뺵한 글을 읽기는 싫고, 책은 읽고 싶은 날(좋은 이야기는 필요한 날), 앞으로는 그림 동화를 한 권씩 빌려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