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루리 마이 집정리 만화
처음 미니멀라이프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유루리 마이의 집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그 상쾌하고 평화로운 상태에 빠져버렸습니다. 유루리 마이의 정리 방법은 정리라기 보다 극한까지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하기도 쉬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잘 버리지 못하는 제가 버리기 마녀를 따라하려니 쉽지 않아, 다음 날 잘 버리는 방법을 알기 위해 유루리 마이의 책을 사러 가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일을 했습니다.
유루리 마이의 책은 얇은 만화책 입니다. 간단한 그림체로 어떻게 버리기 마녀가 되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버리고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다른 미니멀리즘 책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같이 사진은 앞에 몇 장 있고 작가의 생각을 에세이 형태로 기술하거나, 화보집 또는 인테리어 잡지처럼 미니멀리스트의 집 사진을 보여주며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는 유형이 많은데, 만화라는 형태가 독특합니다.
웹툰이나 재미난 만화 같은 것은 아니나, 만화의 형태를 띄기 때문에 좀 더 재미가 있고, '스토리'가 있어서 와 닿습니다. 이 때문인지 "우리집엔 아무것도 없어"는 일본 NHK BS에서 드라마로 만들었습니다. 1화 잠깐 보다 멈췄는데, 유루리 마이의 집(드라마는 셋트장)을 영상으로 보니 더 생생해서 전부 볼까 합니다. 드라마는 30분 짜리 6부작으로 드라마도 그리 길지 않아 보입니다.
책 또한 다 읽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 유루리 마이의 책을 읽고 버리기 마녀의 잘 버리는 방법을 배운 후 열심히 집을 정리하고 나서 이 책도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오랜만에 다시 이 책이 보고 싶어 도서관에서 두 권 다 빌려왔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도 집정리 욕구에 불을 붙여 주는 책이었는데, 다시 읽어도 자극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잘 버리는 버리기 마녀
유루리 마이가 버리기 마녀가 된 것은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는 호더 같은 가족들 덕이었습니다. 증조 할머니, 고조 할머니 할아버지 유품까지 마이의 방에 있었고, 방과 집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해 친구가 놀러 올 수 없는 집이었습니다. 지저분한 집 출신. 작가는 보다 극단적으로 쓰레기장 출신이라는 말도 합니다. 저도 제가 잘 못 버리고, 엄마 아빠도 잘 버리지 못하는 분들이라 집에 뭔가가 참 많았습니다.
짐들에 둘러 쌓여 있으면 집에 손님을 초대할 수가 없습니다. 손님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저부터 집에 있으면 심란하니까 밖으로 돕니다. 가능한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붙어있질 않으니 집은 더 어수선해졌고요. 빨리 돈을 많이 벌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해야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어요.
유루리 마이도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다 버리고 홀가분하게 산 것은 아니고, 정리를 하려다 가족들과 충돌하고, 겉돌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며 독립을 하자 꿈에 그리던 잘 정리된 집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인테리어도 했던 듯 합니다. 그러나 기르는 고양이들이 인테리어 용품들을 망가뜨리고, 청소할 때마다 옮겨놓고 닦는 것이 귀찮자, 하나 둘 없애 봅니다. 인테리어 용품들을 줄이자 고양이들이 장난치고 날라다녀도 다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청소할 때도 훨씬 편해집니다. 그러자 가속도가 붙어 버리기 변태로 진화합니다.
한국에 출판되며 버리기 마녀로 소개되었으나, 일본판에는 버리기 변태라고 하는 듯 합니다. 버리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잘 버리는 버리기 중독자 같습니다. 유루리 마이는 책을 낸 후에 책의 원고도 바로 버리고 싶어 근질근질했다고 합니다. 곧 버렸고요.
결국 유루리 마이의 책에서 얻게 되는 잘 버리는 방법은 다름 아닌 쾌적하고 텅 비어있는 홀가분한 상태에 지향점을 두는 것 입니다. 곤도 마리에처럼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팁을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을 버릴지 말지에 대한 기준도 가끔 나오기는 하나, 그보다는 홀가분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 잘 버리는 비법이었습니다. 저도 따라해 보니 홀가분하고 멋진 이미지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나머지가 군더더기처럼 느껴지며 버릴 수 있는 용기가 났습니다.
다시 시작할 계기
다시 읽으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아직 시작도 안 한 상태여서 이런 부분은 눈에 안 띄었는데, 지금 보니 정리를 어느 정도 했을 때의 증상도 다루고 있었습니다. 유루리 마이는 두 부류로 구분했습니다.
어느 정도 주변을 정리하고 그 상태에서 만족하면서 유지하는 파
더 쾌적하게 살기 위해 버리기 병이 가속되는 파
저의 경우는 전자였습니다. 미니멀리즘에 빠진 뒤 꽤 오랜 기간 동안 정리를 하고 나서 어느 정도 쾌적해 진 뒤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양치질을 슬렁슬렁 하면 치석이 끼듯, 꽤 쾌적하게 만든 상태였어도 정리를 잘 하지 않으며 물건이 들어오는 것을 신경쓰지 않았더니 다시금 짐이 많아졌습니다. 어느 정도 정리하고 만족하더라도, 지속적 노력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덤, 프리랜서를 위한 팁
유루리 마이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작가 입니다. 취미는 청소이고요. 그렇다 보니 일과 살림의 경계가 모호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전환스위치'로 해결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청소부터 하고 나서, 책상 앞에 앉으며 일 모드 ON, 집에서 뒹굴 OFF 이런 식으로 합니다. 특별한 의식처럼 아침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행동 또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짧은 책이니 도서관에 반납하기 전에 한 번 더 읽고 반납해야겠습니다. 다시 읽을수록 다른 것들이 보이고, 스토리가 있는 책이라 의욕을 북돋우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