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 책장 : 요시모토 바나나 즐거운 어른 탐구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여러 권 샀었고, 여러 권 빌렸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은 이 책 뿐 입니다.
'무지개'는 보라보라섬 초반을 읽다가 보라보라섬 여행 경비 찾으며 샛길로 새서 그 이후에는 들춰 본 적이 없고, '키친'도 조금 읽다가 덮고, 책 제목조차 기억 안 나는 책은 사서 실망하여 덮었고...
이 책을 빌려올 무렵은, 책이 잘 안 써지고 고민이 많던 때라 혹시 여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읽었습니다. 다음 날 도서관 책 반납일이라 더 부지런히 읽기도 했고요..
먼저 책 표지와 중간중간의 일러스트는 무서웠어요. 소복입은 귀신 같은 느낌이라, 담담한 느낌이 책이 순간순간 공포물로 변화시켰습니다. 개정판 출시되면 일러스트는 바뀌면 좋겠어요. 무서워요.
'어른이 된다는 건'은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듣게 됩니다.
제가 고민하는 일들이 저만의 일은 아니라,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시모토 바나나는 어릴 때부터 개쌍 마이웨이 스타일의 특이한 분이었던 것 같고, 몹시 견고한 자기 세계가 있었습니다. 힘든 일을 대체로 쿨하게 흘려보내는 듯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저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라 막 공감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공통적인 일을 겪으며 비슷한 결론을 내린 부분에서는 '사람 사는게 다 똑같구나' 하는 정도일 뿐, 찰지게 와 닿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크게 남는 것은 두 가지 였습니다.
내 안에 울고 있는 아이
30쪽.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엉엉 우는 어린아이를 인정하는 것이라고요. 애써서 거기에 없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라고요.
나이를 얼마나 먹든 그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즉,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인 자신을 살갑게 보듬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부산대 심리학과 심혜숙 교수님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8시간 가까운 강의에서 수시로 눈물 그렁그렁해지는 좋은 강의였습니다. 특히 내 안의 아이,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내가 좀
보듬어 주라는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에서 똑같은 글귀를 보니 반가웠습니다.
끝난 관계, 가족 관계
56 어쩌면 나무에 열린 열매가 무르익어 저절로 떨어지듯, 우리의 우정도 싹이 튼 때부터 세월을 거듭하다 저절로 끝났는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친했던 친구가 더 이상은 절친이 아닐 때, 참 허탈했습니다. 인생의 큰 덩어리를 덜어낸 느낌이었는데, 바나나는 좀 더 쿨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인 듯 합니다. 가족관계도 그렇고요.
26쪽. 나만 그런게 아니야. 같이 와 준 이 두 사람(할머니, 아빠)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하루였어.
가족에 대한 감정만큼은 모두 비슷한가 봐요. 혼자 행복할 때도 미안하고, 더 잘 하지 못해 죄송하고, 그렇지만 함께 있을 때 불편한 구석이 있고, 더 가까워지고 싶거나 더 어떻게 하고 싶진 않지만 아무 것도 안 하자니 마음이 괴로운 복합적인 감정이 넘실댑니다. 그 부분을 짚으며 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부분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 & 김난주
이 책에서만 얻은 특별한 구절이나, 확 와 닿는 부분은 없었으나, 끝까지 읽어볼 만 했습니다.김난주 번역가의 후문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가끔 김난주 선생님이 번역한 책들을 읽노라면, 책이 정말 좋은지 밋밋한 글귀를 김난주 선생님이 다시 풀어내신 글이 좋은 것 인지 헷갈립니다. 문득, 요시모토 바나나, 김난주 선생님이 어떻게 생기셨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동안 책에서 이름으로만 많이 뵈었는데...
어른이 된다는 것에 나온 요시모토 바나나의 독립적 세계관을 보고 나서 사진을 봐서인지, 뭔가 개성 강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각이 져 있는 듯한 성격과 달리 인상은 둥글다는 것이 의외이기도 했습니다.
김난주 선생님은 더 차분하고 편안한 '선생님'같은 모습이셨습니다.
기승전 팬심으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