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반야 아재" 줄거리와 놀라운 무대, 그들은 왜 그렇게 사는가?

연극 "반야 아재"를 보았습니다. 손숙, 심은경, 조성하... 쟁쟁한 배우들의 이름과 해오름극장이라는 좋은 무대에 끌려 내용이 뭔지도 모른 채 딱 한 자리 남아있던 좌석을 예약했습니다. '반야 아재'면 아재아재 바라아재, 반야심경 이런 불교적 주제인가 했는데, 안톤 체호프의 해외 원작인 '바냐 아저씨(uncle Vanya)'의 한국식 각색이었습니다.

 

반야 아재, 손숙, 조성하, 김승대, 심은경

 

연극 반야 아재 줄거리 

내용은 전혀 재미없는 내용입니다. 

 

서병후라는 일제시대 경성에서 대학교수를 했던 인물은 박씨 부인과 결혼을 해 딸 서은희를 낳고, 지주 집안이었던 박씨 부인의 집에서 생활비를 대줍니다. 그러나 박씨 부인이 죽자, 서병후는 딸 서은희를 처가에 맡기고 자기는 일본에서 성악을 공부한 젊고 예쁜 여자와 새장가를 갑니다. 이 상황이면 사실상 이전 처가와는 인연이 정리되기 마련인데, 놀랍게도 이전 처가(박씨 부인의 집)은 외손녀를 키우고, 서병후와 새로 들어온 아내의 생활비를 꼬박꼬박 부쳐줍니다. 그 생활비를 보내주기 위해 박씨 부인의 남동생 박이보와 딸 서은희는 꽤나 고생을 하고, 변변찮은 음식 한 번 제대로 못 먹고, 괜찮은 옷 한 벌 못 사 입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서병후가 늙고 병들어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자, 아내를 데리고 이전 처가로 옵니다. 서병후는 서재를 차지하고 앉아 아무때나 자고 아무때나 일어나고, 서병후로 인해 집안 생활리듬이 엉망이 됩니다. 아침을 12시에 먹고 점심을 오후 6시에 먹는 상황이 된거지요. 그리고 밤 12시에도 일하는 사람을 불러 자기 차를 만들어 내오라고 하는 등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통풍으로 고생을 하여,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의사를 부르라고 해 놓고는 의사가 일부러 먼 걸음을 왕진 오면 돌파리라며 의사 말을 안 듣습니다. 통풍이 아니라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면서 자기가 진단을 내립니다. 

 

서병후의 전) 장모이자 박씨 부인과 박이보의 엄마인 양말례는 상황이 이러함에도 '교수 사위'라는 타이틀을 놓치기 싫어, 교수의 편만 듭니다. (그러니 서병후가 안하무인으로 계속 생활비를 요구하고, 이전 처가에 새 부인까지 데리고 와서 왕 노릇을 하고 있을 수 있겠지요)

 

가관이었던 서병후는 한술 더떠서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인천으로 옮기자고 합니다. 인천으로 가면 더 큰 정미소를 사고, 문화주택(아마 요즘 단독주택 인듯합니다)을 살 수 있다고요. 그러나 이 계획에는 박이보, 자기의 딸인 서은희, 그리고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살 곳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고려치 않은 것 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나요?"라고 묻자, 능구렁이처럼 '지혜를 모아봅시다'라면서 넘어갑니다. 

 

결국 폭주한 박이보가 총을 쏘고, 다행히도 한 발도 못 맞추고, 놀란 서병후는 아내를 데리고 다음날 인천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박이보는 이런 상황임에도 '생활비는 보내던 대로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좀 더 소름돋는 것은 이것의 원작이 해외 - 러시아 - 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만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도 이런 시대가 있었나 봅니다. 인텔리 한 명을 위해 나머지 가족들이 희생하고 삶을 포기하고, 그렇게 성공시켜 놓으면 지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믿으며, 가족들은 시골 촌놈이라고 무시하는 일이 빈번했던 시대 말입니다. 그럼에도 나머지 가족들은 전생의 카르마라도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을 위해 묵묵히 계속 희생하고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왜 그렇게 사는가?

이 연극의 백미는 마지막에 서은희가 외치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고요. 어쩌겠냐고요. 

 

"어떡하겠어요. 살아야죠! 우리 살도록 해요. 길고도 숱한 낮과 기나긴 밤들을 살아 나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해요."

"도망가지 말고 살아가요. 한발 한발 걸어나가요. 휴식 같은 거 바라지도 말고 지금도, 늙어서도 일하기로 해요."

"이 세상의 고통과 눈물이 다 사라지고 나면, 우린 보석으로 장식된 아름답고 황홀한 하늘을 보게 될 거예요. 그때 우린 기뻐하며 미소 짓게 될 거예요.""

 

체념 같기도 하고 수용 같기도 한 대사가 마음에서 맴돌았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뭘까요? 

다른 한 편으로는 저들이 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양말례, 박이보, 서은희 이들은 서병후와의 인연을 끊고 그 돈으로 자기 먹고 쓰고 살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서병후 뒤치닥거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양말례와 박이보가 서병후와 후처 오영란의 생활비를 대기 위해 개고생을 하는 것은 '교수 사위' '교수 매형'이라는 허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시골에서 정미소하고 농사지으면 의미가 퇴색되나, 교수 한 명을 길러내어 문학사의 역작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고됨이 희석되었나 봅니다. 서은희는 사실상 자기를 버린 아버지이나, 그 사실을 직면하기보다 아버지를 위해 고된 노동을 하면서 생활비를 보내면서라도 아버지와 이어져 있는 것이 '버림받았다'는 현실을 직면하는 것보다 덜 아팠을 수도 있고요. 

이렇게 타인을 보면, '저것만 끊어버리면 되는데, 왜 그걸 못 놓지?'라는 것이 쉬이 보이나, 제 일이라면 저 역시 똑같이 했을지도 모릅니다. 똑같은 바보짓을 하기도 했고요. 

 

맛깔나는 배우들의 연기와 비가 내리는 놀라운 무대 

반야 아재의 줄거리는 재미는 커녕 복장 터지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배우분들이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이 얄밉고 짜증나는 상황을 웃어넘기게 만들고, 공감이 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서병후, 그의 젊고 예쁜 후처 오영란, 장가도 못가고 매형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박이보, 역시 결혼 못하고 아빠와 새엄마, 가족들을 위해 일만 하는 서은희, 교수 사위를 두둔하고 모던 잡지를 좋아하는 장모 양말례, 그리고 서은희가 짝사랑 하지만, 서병후의 아내 오영란에게 반해버린 이상주의자 의사 안해일, 이기진 등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고 저 시대, 저 상황 속에 살면 어쩌면 저것이 나름의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장 터지는 내용을 '어, 벌써 1막이 끝났어?' '어? 벌써 끝이야?' 하면서 빠져들게 만드는 배우분들의 힘이 놀라웠습니다. 무려 2시간 45분 짜리 연극인데 금방 끝납니다. (반야 아재 시간은 1부 70분, 인터미션 20분, 2부 75분입니다)

 

반야 아재 출연 배우

 

또 놀라운 것은 무대였습니다. 저는 무대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처음 봤어요. 

1막이 시작하자마자, 의사 안해일 선생이 수도를 틀어 족욕을 하는 것을 보고, '무대에서 물을 쓰는구나' 했는데, 그 물을 무대 한 가운데 버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무대 가운데에 연못이 있던 것 입니다. '무대에 연못이 있네'도 놀라웠는데, 이어서 비가 내리기까지 했습니다. 거의 1막의 절반 이상 비가 내린 듯 합니다. 무대에서 쏟아지는 비는 놀라웠습니다.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 쉬는 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다가가, 아직 비가 조금 내리는 그 무대를 담았습니다. 

👉 반야 아재 비내리는 무대 숏츠

 

2막에서 등장한 정미소 배경도 놀라웠습니다. 거대한 기계가 실제로 돌아갑니다. 

반야 아재의 무대 디자인을 하신 분은 누구실까 궁금해 찾아보니, 이태섭 님이라고 합니다. 정말 잊지 못할 놀라운 무대였습니다. 비가 내리고, 정미소의 육중한 기계가 돌아가다니!

 

반야 아재 무대 디자인

 

그리고 마지막 무대 인사 입니다. 

 

©무중력서재(mulibrary.com) 글을 퍼가지 마시고 공유를 해주세요.
무중력서재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리뷰에 사용된 책, 영화 등의 이미지 외의 내용은 작성자 라라윈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